도시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비법이 궁금하죠?

도시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비법이 궁금하죠?

도시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비법이 궁금하죠?

[오마이뉴스의 2013 전국투어-수도권19] 도시농부와 함께 하는 ‘텃밭투어’

기사등록 13.12.08 ㅣ 작성 이지영(여성환경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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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여류작가 전혜린의 수필에는 ‘아스팔트 킨트(Asphalt Kint)’라는 독일어가 등장한다. 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회의 고향 없는 아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흐르는 고향의 정서는 부재한다. 아파트, 고층건물, 아스팔트에 둘러싸여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에게 “딸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물으면 옆 건물 대형마트를 가리킨다는 우스갯소리는 서글픈 현실이 되어버렸다.

본디 농업과 도시는 하나였다. 20세기 초부터 산업화와 함께 진행된 도시화 이전까지 아스팔트로 도배되어 있는 ‘도시’와 퇴비똥 냄새가 뭉근히 퍼지는 ‘고향의 농사’가 구분되지 않았다.

최근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도 농업과 도시가 다시 만나고 있다. 주말농장, 옥상텃밭, 공동체 텃밭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안전한 먹거리, 도심 속 여유, 농사 문화와 생태적 감수성 등 텃밭을 매개로 오고가는 이야기도 다채롭다.

그러나 정작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어디에 텃밭이 있는지, 다른 지역의 도시농부는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궁금해도 찾아갈 길은 쉽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봄, 평소에 시간과 품을 들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서울의 텃밭들을 찾아가는 ‘서울도시농업투어(일명 텃밭투어)가 만들어졌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텃밭으로 마실가요

갈현텃밭2▲  갈현도시텃밭. ⓒ여성환경연대

나름 전국 최초로 시도되는 텃밭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는 은평구의 갈현텃밭. 병풍처럼 텃밭을 감싸고 있는 북한산 자락의 기운과, ‘갈현텃밭에 없는 7가지’ 푯말이 매력적인 곳이다. 갈현텃밭에는 화학비료, 농약, 비닐멀칭, 매점, 쓰레기통, 취사행위, 주차장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도시농업지인 갈현텃밭의 정식 명칭은 갈현도시농업공원으로, 남산 궁국장 이전 예정지로 개발위기에 처한 그린벨트 지역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조성되었다.

인심 좋은 텃밭 활동가들과 상추를 따서 비빔밥을 나눠 먹으며 산자락의 정기를 듬뿍 받고 있노라니 이게 서울 한 복판에서 웬 신선놀음인가. 각자가 먹은 그릇을 수세미 줄기를 따다가 직접 설거지하다보니 상추와 내가 도시에서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이 궁금해진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이동한 다음 목적지는 마포구의 상암두레텃밭. 이곳은 본래 마포구청의 소유지로 공공텃밭 지정을 요구했으나, 마포구의 불허로 도시농부들이 불법 게릴라 경작을 하며 싸워온 곳이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마포구의 도시농업 조례가 재정되었고, 현재의 상암두레텃밭으로 떳떳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년 여간 농사를 지어온 게릴라 농부들과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곳이다.

도심 속의 텃밭 1▲  상암두레텃밭. ⓒ여성환경연대

상암텃밭1▲  상암두레텃밭. ⓒ여성환경연대

상암두레텃밭에서 나온 수확물의 반 이상은 항상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주민의 입가에는 도시농부의 자부심과 텃밭에 대한 애정이 스며있다. 한참을 작물에 대해 이야기 하시더니, 곧 이어 텃밭의 상추를 이용한 효소 만드는 법을 설명해 주신다. 어머, 상추로도 효소를 만들어?

만성불면증은 한 방에 해소되겠네 싶어 입맛만 쩝쩝 다시고 있으니, 오늘은 시간이 없어 함께 만들기 워크숍은 못할 것 같아 준비했다며 밤새 만들어 놓은 상추효소를 한 병씩 참가자들 품에 들려 보내신다. 우리 텃밭은 오면 빈손으로는 절대 안 보낸다고 허허 웃으시면서.

서울 한 복판의 광활한 노지텃밭

먼저 방문한 노지텃밭은 금천구의 한내텃밭이다. 한내텃밭은 옛 대한전선의 유휴 부지를 2년이라는 기한 조건을 두고 조성된 곳이다. 그 전까지 농사에 관심 있는 금천 구민들은 서울 외곽의 농장에 차를 타고 주말마다 드나들곤 했는데, 한내텃밭이 생긴 이후로는 집 가까이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과의 정도 끈끈해져 평소에도 목공소모임, 풍물모임, 퇴비연구모임, 텃논두레단 등 다양한 소모임이 활성화 되어 있다. 텃밭을 한참 둘러보던 중, 때마침 금천구청장이 텃밭을 방문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주민과 구청장이 격 없이 만나 마을일을 의논하며 막걸리 한 판을 벌일 수 있는 곳.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도 텃밭에서는 가능하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한강 위 노들섬에 만들어진 노들텃밭. 본래 오페라 건립이 중단된 이후 임시적 부지 활용 차원에서 조성되었는데, 현재는 ‘생태순환유기농업을 실천하는 공원’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노들텃밭의 핵심은 ‘토종’이다. 토종논과 토종 밭에서는 토종 종자 지키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마침 방문했을 때가 모내기철이라, 투어 참여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논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모내기라니.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노동요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농사와 예술이 만나는 옥상텃밭

dsc04737_park1632▲  문래도시텃밭. ⓒ여성환경연대

텃밭투어 대망의 마지막 날, 먼저 찾은 곳은 문래동 철공소 단지의 옥상텃밭이다. 철공소, 예술가 창작 마을,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만든 문래도시텃밭은 단순히 농사를 넘어 이웃을 만나고, 음식을 나누며 도시의 정을 쌓는 공간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옥상에 다르니 삼삼오오 텃밭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모여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SONY DSC▲  문래도시텃밭의 채식버거. ⓒ여성환경연대

텃밭 한 쪽에서는 허브 잎을 따 오일 만드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고, 다른 한편에서는 텃밭 작물을 활용한 채식버거 준비가 한창이다. 자고로 텃밭에 온 손님은 배불리 먹여 돌려보내야 도시에 텃밭이 많아질 수 있다며. 이곳에서는 평소에도 빗물 저장통, 그림자 연극, 전직 은행장의 재무 상담 이야기 등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공동체 프로그램이 다양하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은 옥상텃밭은 소비문화가 넘쳐나는 홍대에 위치한 텃밭다리이다. 다리에는 대안적 삶의 기술로 농사를 배우는 청년들, 농사를 하나의 놀이이자 새로운 문화라 여기며 옥상텃밭에서 공연과 나눔의 시간을 꾸려가는 청년들이 있었다.

이들은 사과박스, 버려진 서랍, 기타와 드럼통 텃밭 등 독특한 텃밭 디자인을 선보이며 텃밭에서 개성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또한 마포에서 기른 농산물을 마포에서 소비하기 위해 브랜드 ‘밈(MIM:Made In Mapo)’을 만들어 마포의 레스토랑에 공급하는 등 도시의 소비자와 농부가 가까워지기 위한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도 함께 하고 있다.

내가 먹을 채소를 직접 키우는 자급자족의 철학을 실천하는 공간. 이웃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간. 텃밭투어는 이런 공간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몸이 기억하고 있던 생태 감수성의 복원을 가능케 한다. 아직 소문나지 않은 숨겨진 보물 같은 텃밭들이 서울에는 무궁무진할 터. 내년에는 또 어떤 텃밭투어를 만들어볼까.